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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사회당/공산당 - 북부 노동자와 남부 빈농의 연대를 향해

esmile1 2024. 12. 17. 07:19

이탈리아 사회당/공산당 - 북부 노동자와 남부 빈농의 연대를 향해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진보정당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안토니오 그람시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람시는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그의 사상은 '헤게모니', '역사적 블록', '진지전' 등의 개념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들이 가리키는 실제적인 목표는 이탈리아 북부 노동자와 남부 빈농의 연대였습니다[1].

이탈리아의 통일과 남북 문제

이탈리아의 통일은 1860년대에 이루어졌지만, 이는 '불완전한 통일'이었습니다. 통일을 주도한 세력은 공화주의 민족주의 세력이었지만, 실제로는 사르데냐 왕국과의 타협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는 근대국가로 출발했지만, 심각한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1].

가장 큰 문제는 '남부 문제'였습니다. 북부 이탈리아는 통일 이전부터 이미 자본주의화되고 있었던 반면, 남부 이탈리아는 여전히 중세적인 지주 귀족 세력이 대토지를 소유하고 소작농을 수탈하는 구조였습니다. 통일 이후에도 이러한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벌어졌습니다[1].

이탈리아 사회당의 등장과 성장

19세기 말,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도 사회당이 등장하여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사회당 내에서도 좌파와 우파의 분열이 있었는데, 우파의 핵심 지도자는 필리포 투라티였고, 좌파의 리더는 지아친토 메나티였습니다[1].

사회당 내의 갈등과 무솔리니의 등장

흥미로운 점은 후에 파시스트 독재자가 된 무솔리니가 원래 사회당의 좌파 지도자였다는 것입니다. 무솔리니는 사회당 기관지 '아반티!'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습니다[1].

제1차 세계대전과 이탈리아 사회의 변화

제1차 세계대전은 이탈리아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사회 불안정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이로 인해 1919년부터 1920년까지 '붉은 2년'이라 불리는 심각한 사회적 소요가 일어났습니다[1].

북부 노동자와 남부 농민의 투쟁

이 시기에 북부에서는 노동자들의 전투적인 파업이, 남부에서는 소작농들의 투쟁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두 투쟁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노동조합과 사회당이 주로 북부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남부의 소작농 투쟁과 제대로 연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1].

안토니오 그람시와 '오르디네 누오보' 그룹

이러한 상황에서 주목받은 젊은 사회당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안토니오 그람시와 팔미로 톨리아티를 중심으로 한 토리노의 젊은 사회당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남부 출신으로 북부의 대학에서 공부하며 사회주의 이념을 접한 이들이었습니다[1].

'오르디네 누오보'와 피아트 공장 점거 파업

그람시와 그의 동료들은 '오르디네 누오보'(새로운 질서)라는 신문을 창간하고, 1920년 피아트 자동차 공장 점거 파업을 주도했습니다. 이 파업에서 노동자들은 단순히 공장을 점거하는 것을 넘어 자동차를 직접 생산하는 노동자 자주경영의 실험을 했습니다[1].

파시즘의 등장과 좌파의 대응

1922년,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 세력이 '로마 진군'을 통해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 좌파는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1].

그람시의 새로운 노선

그람시는 1923-24년경 귀국하여 공산당의 새 집행부를 구성하고 '신노선'을 추진했습니다. 이는 공산당의 대중정당 성격을 강화하고 파시스트에 맞서 싸우며, 사회당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1].

그람시의 사상과 유산

그람시는 1926년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되었고, 1937년 옥중에서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옥중수고'를 통해 후대에 전해졌습니다[1].

남부 문제와 노동자-농민 동맹

그람시의 핵심 사상은 '남부 문제의 몇 가지 측면'이라는 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북부 노동자와 남부 농민의 연대가 이탈리아의 지배 질서를 깨뜨릴 수 있는 열쇠라고 보았습니다[1].

결론

그람시의 사상은 단순히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포함한 많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제공합니다. 분열된 민중 집단 사이의 연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기존의 지배 질서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입니다[1].